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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
제목 왜 우리는 어린이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는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자 2014-05-26
조회수 445

왜 우리는 어린이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는가?


 

1995년 네팔의 어둠은 오후 7시만 되면 거의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스위치 하나만 올리면 자동으로 들어오던 환한 불빛이 네팔에선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으므로 사람들은 옥상에 촛불을 켜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라디오를 듣곤 했었다.

그때 나는 한국으로부터 귀향한 산재 당한 이주노동자들을 찾아 한국정부에 보상신청을 하는 절차를 밟기 위해 네팔의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네팔의 작은 여인숙의 옥상에서 네팔처럼 가난한 이웃 나라인 파키스탄에서 어린 노동자가 총에 맞아 사살 당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크발 마시, 그는 당시 열두 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이크발은 어린 나이에 카펫공장에 끌려가 노예노동을 해야 했다. 열두 살이 된 이크발은 노예노동에서 해방된 뒤 어린이 노동 해방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두려워하고 미워했던 어른에 의해 길거리에서 사살당해야만 했다.

 

전 세계적으로 21100만 명의 5~15세의 어린이 노동자들이 있다고 유니세프는 발표했다. 어린이 노동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아프리카로 이곳에서는 5~14세 어린이 중 41%가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아시아는 21%, 카리브 해 지역은 17%, 그러나 아시아는 인구가 많아 어린이노동 전체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네팔에만도 5~14세의 41.7%26십만이 어린이 노동자라고 국제노동기구인 ILO가 발표했다. 이 중 36%는 학교에 다니지도 못하고 종일 노동해야만 한다. 그중 127천 명은 어른들도 힘들어하는 위험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고 57천 명은 부모의 빚 등에 의해 강제 노동하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평균 14시간 이상 노동하는 섬유 수공업 카펫 공장에서부터, 광산, 차 플랜테이션-차 플랜테이션에서는 하루 26kg을 수확해야 1달러를 받을 수 있다.-등짐 꾼, 돌 찧기, 건설현장, 벽돌공장, 가정부, 상점, 노점, 그리고 성 산업까지 그들의 노동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심지어는 이웃 나라인 인도로 이주노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 인도의 어린이들은 네팔로 이주노동을 하러 오기도 한다.

 

가난한 나라에서의 이주 노동은 국가에서 국가로의 이동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서 국가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어른들을 제외하곤 국가에서 국가로 이동할 수 없는 더욱 가난한 자들은 그들 국가 내부의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해 잘 사는 나라들의 국민들이 소비할 물품들을 생산하고, 남은 시간에는 다른 나라에서 이주노동으로 돈을 벌어 또 다른 모습의 고용주가 된 국내의 부유층을 위해 노동한다.

 

이 노동의 사슬 가장 밑바닥에 가난한 어린 노동자들이 있다.

 

공산주의인 마오주의자들과 현재 네팔을 통치하고 있는 국왕과의 싸움이 내전으로 확대되어 네팔의 정치상황은 오늘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판국이다. 네팔 사람들은 수도 카트만두를 제외하곤 모두 마오바디(마오공산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믿고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열다섯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다란은 그런 의미에서 마오바디들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간 동네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동의 가장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싸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세상은 오늘의 양식을 해결해서 내일 살아남을지 말지가 더 성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란의 외곽 지역에서 살고 있는 서르밀라도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 중에 하나다.

다란에서부터 두 시간 정도를 더 가면 여섯 살의 어린이 노동자 서르밀라가 일하는 다리 하나가 나온다. 다리 밑에는 물도 흐르지 않는 강이 나오고, 강 옆으로는 서르밀라의 삶이 시작된 얼기설기 엮어진 움막들이 있다. 가녀린 빗방울조차 막아줄 수 없을 것 같은 그 집에서 서르밀라는 돼지들과 올해 열네 살인 언니 네트라와 엄마 아빠와 함께 산다.

아버지는 8년 전에 사고가 나 다리를 쓸 수 없고, 엄마는 돌을 찧으면서 생긴 돌가루 파편 때문에 눈에 병이 들었다. 언니 네트라는 다섯 살부터 노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올해야 초등학교 2학년에 입학할 수 있었다. 서르밀라도 언니와 함께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함께 밥을 짓고 강가에서 돌을 운반한다. 작은 머리에 돌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를 묶고 강가에서 돌을 담아 비척비척 맨발로 일터까지 운반한다.

어린 서르밀라가 태어나서 배운 것이 있다면 죽도록 노동하지 않으면 굶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드라 버르데와(45, )는 서르밀라와 같은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다. 그녀에겐 6세의 딸과 8세의 아들이 있다.러마일로라는 곳에서 농업노동자로 일했던 인드라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5년 전부터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강가에서 움막을 짓고 강에서 운반한 돌들을 찧어 생계를 유지해왔다. 전 가족 4인이 한 달 동안 돌을 찧어 벌어들이는 돈은 2,200루피(30,000). 들이 트랙터로 하나 가득 돌을 찧어 넣으면 1,100(15,000)루피를 벌 수 있는데, 가족이 열심히 노력하면 한 달에 트랙터 2개 분량쯤을 찧을 수 있다. 그들이 열심히 찧어 작게 만든 돌들은 도로 건설이나 집을 짓는 데 쓰인다.

 

현재 인드라의 아들과 딸은 국제노동기구가 시행하는 어린이 노동자 학교보내기의 1년 프로그램 대상자들이다. ILO 프로그램이 끝나는 내년에도 여전히 학교에 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지금도 생계가 막막한 인드라는 이 일 년 동안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반으로 줄어든 수입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

 

아이들은 우리 노동의 절반을 하지요. 그들이 강가에서 돌을 날라 오고, 앉아서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란 뿐만 아니라 네팔의 전 지역의 도로나 강가에서 돌 찧는 어린이 노동자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도 카트만두의 다딩 계곡의 5km 안의 거리에만도 2,000여 명의 돌 찧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중 500여 명이 어린이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더러운 주거환경과 위험한 노동환경 때문에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부모와 사회가 강요하는 노동 때문에 어린 시절에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권리인, 교육, 건강, 보건, 복지, 영양분을 공급받을 권리를 잃어버렸다. 어린이 노동자가 싸고, 다루기 쉽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노동력쯤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그리고 아무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어린이 노동자들에겐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5개 조항에 이르는 1923년의 아동의 권리선언 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인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다 오른손 세 손가락을 잃어버린 먼주 타파씨는 어린 아동노동자 사르비나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꿈에 대해서 묻지 마세요. 그들은 꿈이 무엇인지 몰라요, 우리의 세상은 너무 좁기 때문이에요

 

누가 그들에게 꿈꾸는 것을 돌려줄 것인가?

 

                                                                                                                                            김요한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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